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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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제주킹 조회 4회 작성일 2021-04-14 20:20:2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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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녀석들 - 리턴즈] 보성사 바로 앞이 파출소?! 두 번째 위기, 검문을 피하라! 20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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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사냐 신문관이냐?"...2개의 독립선언서 / YTN

[앵커]
3·1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독립선언서가 판형과 철자가 다른 두 가지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국가는 이들 독립선언서를 모두 인정하고 있지만, 둘 중 하나의 진위가 의심된다는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가 있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승배 기자입니다.

[기자]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3.1 만세 운동의 특징 중 하나는 독립선언서가 상징적 도구였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독립선언서를 선창하는 것을 신호로 다 함께 만세를 외쳤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선언서는 '기미 독립선언서', 정확히 말하면 보성사 판입니다.

보성사는 이 문서를 찍어낸 인쇄소 이름입니다.

그런데 다른 인쇄소에서 만든 독립선언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신문관 판, 독립선언서 초안을 쓴 최남선 선생이 운영했던 인쇄소에서 찍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두 개의 선언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보성사 판이 신문관 판보다 가로가 8.9cm 더 길고, 세로는 5.3cm 짧습니다.

글자 크기도 3포인트가량 차이가 납니다.

단어 선택과 국문 표기도 다른 점이 발견됩니다.

보성사 판은 국호를 '조선'이 아니라 '선조'로 순서를 뒤바꿔 썼습니다.

신문관 판은 상대적으로 현대적 표기법에 가깝습니다.

지난 2015년 말, 정부가 두 독립선언서를 모두 국가지정기록물로 정하면서 공식 문서가 두 개가 됐습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신문관 판을 두고 의견이 갈립니다.

신문관 판은 최남선이 보성사에 활판을 넘기기 전에 자신이 운영한 인쇄소에서 먼저 찍었다고 전해지는데, 사실이라면 민족대표의 인원수가 틀리다는 겁니다.

민족 대표 명단을 확정하지 못하다가 보성사 인쇄 때에야 2명이 급하게 추가됐지만, 앞서 찍었다는 신문관 판에도 최종 명단과 같은 33명 이름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박찬승 / 한양대 사학과 교수 : 실제로 민족대표 이름이 33명으로 확정된 것은 (1919년) 2월 27일 저녁 7시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전에는 33명 이름이 먼저 들어간 신문관 판을 만들어서 인쇄했다, 그런 가정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신문관 판이 먼저, 보성사 판이 나중이라면, 현대적 표기법을 되레 옛 방식으로 바꾼 셈인데 일제 감시를 피하느라 촉박한 상황에서 왜 그랬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김미미 /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 : 신문관 판에서 보이는 'ㅄ'받침, '없다'에 활용된 자음군 같은 경우는 1930년대 이후 자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표기법이고, 10년대 20년대 자료에서는 주로 'ㅂ'만 받혀져 있는 '업다', 이런 유형의 받침이 나타나서….]

다른 쪽에선 보성사 판이 양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건 맞지만, 신문관 판이 섞인 선언서가 국내 외에서 발견되는 걸 보면 존재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이정은 / (사) 3·1 운동 기념사업회 회장 : 어떤 것은 보성사 판이 6, 신문관 판이 4 표기가 그렇게 섞여 있고, 어떤 것은 7:3으로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신문관 판의 존재를 부정할 수가 없다.]

독립선언서가 몇 장 인쇄됐는지를 두고도 2만천 장이다, 3만5천 장이다, 의견이 나뉩니다.

원본이라고 알려진 문서들도 진본인지 과학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진위도 가리지 못한 채 국가 기록물로만 지정된 독립선언서는 갈 길이 먼 3·1 운동 역사 연구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YTN 이승배[sbi@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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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화해] 비극의 출발점- 보성 지역 여순사건 Full ver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이후 1948년 10월 말부터 1950년 초까지 보성지역 민간인이 토벌군경에게 집단희생된 사실을 확인하고 진실규명을 결정한 사례.

⇨ 진화위, 여순사건 등으로 14연대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사건을 조사...
1948년 10월 말~1950년 9월
여순사건 발발후 10월 22일까지, 반군과 토착좌익세력의 보성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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