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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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겜블러 조회 2회 작성일 2021-01-22 15:38: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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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국사전 – 닫힌 시대의 젊은 열정, 한국 천주교 창설 주역 이벽 / KBS 2007.12.22 방송

- 세계 유일의 자발적 발생, 한국 천주교
18세기 조선,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일무이한 일이 발생한다.
단 한 명의 외국인 선교사도 들어오지 않은 조선 땅에 천주교가 자발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당시 조선은 성리학적질서 아래 모든 사회가 통제된 닫힌 사회였다. 젊은이들은 성리학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했다.
때마침 그런 그들에게 서구학문과 사상이 들어오는데....
당시 중국을 통해 들어오던 서학을 받아들인 젊은 선비들.
그리고 그 선비들 중 하나였던 광암 이벽은 스스로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이 땅에 천주교의 역사를 싹틔운다.

- 광암(曠庵) 이벽은 누구인가?
10세 남짓한 어린 시절부터 홀로 공부했던 이벽. 그의 천재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심지어 다산 정약용마저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중용강의보]를 쓸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뜻한 바가 있었던 이벽은 과거의 뜻을 일찍 접는다.
이벽이 추구한 것은 조선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이었다. 때문에 이벽은 유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유학 외에 다양한 학문을 공부한다. 그 과정에서 서구의 학문을 공부하던 그는 스스로 천주교 교리를 깨우친다. 그리고 이벽은 마침내 천주교를 종교로서 받아들이는데....

- 이벽, 한국천주교사의 주역이 되다
경기도 광주군 앵지산 자락의 천진암. 1779년 겨울 이곳에서는 뜻을 같이하는 선비들이 모여 유교를 공부하는 강학이 열렸다.
강학이 한창 진행 중인 새벽, 이벽은 눈 덮힌 산을 넘어 선비들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벽은 정약용, 정약전. 권철신과 같은 당대 선비들에게 천주교라는 사상을 전한다.
조선 최초로 영세를 받은 이승훈도 이벽의 권유로 북경에서 서양 선교사를 만나 세례를 받았다.

- 효(孝)인가, 신앙인가?
을사추조적발사건 이후 나라에서는 서학을 금지시켰고, 유교 윤리에 충실했던 문중들 역시 서학을 금지시킨다.
그러나 문중의 협박에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이벽을 보다 못한 이벽의 아버지는 이벽이 천주교와 결연하지 않으면 자결하겠다고 하는데....
효와 신앙, 아버지의 목숨과 종교적 믿음의 갈림길에 선 이벽이 내린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한국사전 25회 – 닫힌 시대의 젊은 열정, 한국 천주교 창설 주역 이벽
(2007.12.22.방송)
http://history.kbs.co.kr/

영상한국사 I 283 실학과 천주교 ? 성호학파로부터 시작된 한국 천주교

18세기 청에 온 선교사들은 동양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천주교 서적뿐만 아니라 서양의 과학기술서까지 한문으로 번역해 소개했다. 새로운 서양학문은 사신들을 통해 조선에도 전해졌다. 서학은 주자학만을 중시하던 조선사회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성호 이익을 필두로 한 실학운동으로 이어졌다. 이익에게 학문이란 실사구시의 목적을 위한 도구였고, 사회제도는 개혁이 필요한 낡은 관습이었다. 성호 이익을 스승으로 모시는 남인 계열의 학풍에 속해있던 학자 중에 이벽은 일찍부터 서학에 관심을 가졌다. 1783년 겨울, 이벽은 정약용의 자형인 이승훈을 설득해 청 사행길에 동행하게 했다. 이승훈은 이벽의 부탁대로 청에서 북경 남당교회를 찾는다. 신부들과 필담으로 대화하며 천주교 교리를 익히길 40여일 만에 이승훈은 한국인 최초로 영세를 받는다. 그리고 그가 귀국하면서 가지고 온 천주교 교리서들로 공부를 마친 이벽도 세례를 받는다. 이벽이 정식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한국 천주교회는 신앙공동체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지식인을 상대로 전교에 힘쓰던 이벽은 지금의 명동지역인 명례방에 신앙 근거지를 마련했는데, 당시 명례방은 주로 중인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이벽의 집에는 양반만 출입이 가능했지만, 명례방 출입에는 신분이나 남녀의 차별이 없었다. 어려운 한문 교리서의 한글 번역본을 보급하자 신분고하를 막론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천주교는 급속하게 확산된다. 명례방 신앙집회는 평등사상이라는 새로운 메시지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100년 후 명례방 자리에는 한국 천주교의 요람인 명동성당이 서게 된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03명의 순교자를 성인으로 추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 교황은 한국 천주교가 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자생적으로 발생했음을 강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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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국 천주교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 북리뷰 성당평전 | 시공사 유료광고 | 가톨릭 역사

또 성당이야?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우리 일상과 다 상관이 있는 종교

본 영상은 신간 '성당평전' 북 리뷰 영상이며
한국 천주교 역사에 대해서 해설합니다.

출판사 시공사로부터 지원을 받고 제작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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